“전쟁 모르는 노인들” 한일관계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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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노부오: 경제학자, 아고라연구소 부소장)
한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주간포스트는 한국은 필요없어 특집으로, 월간지 WiLL은 굿바이 코리아!라는 특집을, 하나다 특집은 노 코리아-해체 선언을 특집으로 내놓고 있다. ”외교가 단절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이유는 한국의 뿌리 깊은 반일감정과 이에 대한 일본 국민의 거부에 있다. 일각에서는 한일갈등이 운명인 것처럼 밀레니얼 원한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반일감정은 그다지 뿌리가 깊지 않다. 그것은 정치의 산물이다.
1990년대 ‘역사주제’ 급증
1980년대까지 한일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국은 군사정권 하의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역사적 문제’에 대해 한국에 사과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음 표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 수를 연대순으로 나열한 것이다(기무라 기무라, 『한일 역사인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강제연행, 위안부라는 용어는 1990년대 처음 등장했고, 같은 기간 친일이라는 용어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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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페이지에서 이 기사를 읽고 계시다면 여기에서 이 기사에 첨부된 그림과 표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jbpress.ismedia.jp/articles/-/57549)
90년대 처음 등장강제로 빼앗긴였다. 이 용어는 조선대 교수가 <조선인 강제이주 기록>이라는 책에서 만든 말이다. 전쟁 전에는 100만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당국에 의해 납치돼 일본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과장된 것이었고, 1965년 한일 손해배상협정에서는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규정해 강제징용 문제가 화제가 되지 못했다.
나 역시 1991년 여름 NHK에 한국을 취재했지만 강제퇴거됐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본토에서 징집돼 문어방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증언은 많았지만, 군에 납치됐다는 증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