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한겨레통신
지난해 초 나는 미국 정치리스크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이안 브레머(Ian Bremer) 회장을 인터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폭도들이 미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는 등 미국이 지난 1년 동안 깊은 정치적 불신과 분열에 시달렸던 때다.
브레머는 “미국인의 절반은 여전히 대선이 도난당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결코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해야 한다”고 내레이션했다. 그는 또한 한국을 민주주의의 롤모델로 묘사했습니다.
미국은 2016년 11월 선동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충격을 받았다.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이 왜 이렇게 진화했는지 고찰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라트가 쓴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들어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살펴보고자 하는 책이다. 그런데 독일, 이탈리아, 베네수엘라 등이 교사로 등장한다.
요즘 나는 미국 전략가와 학자들이 민주주의의 모델로 꼽았던 한국을 향해 이 책을 자주 펴본다. 군사 쿠데타와 같은 노골적인 민주주의 파괴가 드물어지는 상황에서 저자들은 내부로부터의 민주주의 붕괴에 주목했다. 그들은 가드레일처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규범으로 ‘상호관용’과 ‘제도적 견제’를 꼽는다.
상호관용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집단적 의지”다. 제도적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규제, 절제, 인내” 또는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관용’과 ‘억제’는 사람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지키고자 하는 ‘상식’이자 ‘문화’입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기반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겹친다. 한국 정치에서는 관용과 절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최고통수와 집권세력은 야당을 청산 대상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전 정부를 비난한다.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 대표는 ‘범죄 용의자’일 뿐, 결코 ‘대화 상대’ 역할을 할 수 없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연단에서 늘 어퍼컷을 하던 대통령이 지금은 대놓고 공격을 가하는 최전선에 선다. 참모와 참모장들이 차례로 전투에 나선다. 법안이 주 의회에서 정체되면 정부는 집행 명령을 내려 이를 피할 수 있고, 대통령은 주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대해 주저 없이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사유가 밝혀진 뒤 자신에게 반대 여론이 강한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특별히 부담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야당은 과반수에 의존해 주기적으로 특검 제안과 국정조사, 해임 결정 제안을 내놓는 등 분노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농성을 둘러싼 상황은 관용과 절제가 사라진 한국 정치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의원들은 단식투쟁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수단을 택했다. 여당은 늘 조롱과 멸시로 대응해 왔고, 이를 막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총장은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날조된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반국가세력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며 “공산주의 전체주의는 학문적 근거가 불분명한 용어다. 그렇다면 이 정부에 용산 전체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용산 전체주의의 압도적인 주역은 역시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내세워 나라를 분열시켰고, 외교 정책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고도로 이분법적인 길로 나라를 설정했다. 대통령은 반공을 강조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척결하기 위한 이념전쟁과 역사논쟁의 최전선에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야당, 시민사회단체를 ‘반국가세력’이라고 부른다. 이를 위해 검찰과 감사원이 실효적인 칼로 동원된다. 대통령은 의회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며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거부권, 참모 임명권 등의 법적 권한을 사용합니다. 대통령과 국민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던 여당은 대통령에게 예속되어 존재감과 독립성을 상실했다.
용산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사람들은 흔히 ‘역대 최악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뜻이다.
//한겨레신문
황준범 | 정치국장 ([email protected]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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