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전 중국 총리 사망으로 국민 불만 촉발, 천안문 광장 2차 사건 우려 증폭, ‘걱정스러운 추측’과 시진핑 경제 정책을 둘러싼 갈등(1/4) | 제이비프레스)

시진핑과 경제정책 갈등 이면에는 ‘불안한 추측’ 돌고 있다

리커창 중국 전 총리가 27일 별세했다 (사진: AP/Afro)

  •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27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68세였습니다. 심장마비였다고 합니다.
  • 그는 정치적 이견으로 시진핑 주석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올해 3월 완전 퇴임했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가운데 부흥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추측’이 나오고 있다. 당국이 조문객들의 이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돼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후쿠시마 카오리 : 저널리스트)

올해 3월 중국 국무원 총리직을 퇴임한 리극강이 10월 27일 오전 12시 10분 사망했다. 이 사실은 27일 오전 8시 직후 중국 국영 중앙TV(CCTV)에 보도됐다. 그는 6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리커창 총리는 은퇴 후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11시경 자신이 묵고 있던 도쿄 게스트하우스 호텔 옆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경호원이 구출해 즉시 입혀줬다. 호흡기 관리. ECMO) 등의 조치를 취한 뒤 환자는 인근 아케보노 병원으로 이송됐다. 치료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27일 새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치적 차이를 둘러싸고 시진핑과 공공연하게 갈등을 벌이던 리커창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온라인상에서 암살설, 스트레스 사망설 등 불안한 추측을 촉발시켰다. 일부에서는 덩샤오핑과의 권력 갈등으로 강제 퇴직을 당하다 병으로 사망한 후야오방의 불행을 회상하기도 했다. 후야오방의 죽음은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이어진 정치적 사건이었다.

리커창(Li Keqiang)은 안후이성(Anhui Province)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지하고 재능 있는 그는 북경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가 졸업했을 때 그의 성적은 최고였습니다.


영국 유학설이 돌았으나 당 관료와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젊은 엘리트 관료와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후야오방이 설립한 기관인 공산주의청년동맹에서 교육을 받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45세에 허난성 관찰사가 되었으며 최연소 지방 관찰자로 꼽혔다. 허난성 서기와 요녕성 서기를 거쳐 2007년 후진타오 당시 주석에 의해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총서기이기도 했던 후진타오(胡錦濤)는 리극강을 총서기 후보로 만들고자 했으나 2007년 후진타오 정부와 장쩌민 의회정부 사이의 싸움 끝에 장쩌민의 지지를 받은 시진핑(習近平)이 당선됐다. 당의 총서기 후보로 후진타오 세력이 당이 선호하는 리커창을 총리 후보로 결정했다.

2013년부터 10년 동안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Elite B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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